책제목 사프란블루
글쓴이 푸른향기 날 짜 16-10-25 08:31 조회( 198 ) 댓글( 0 )
사프란블루
저   자 : 한효정
출판사 : 푸른향기
발행일 : 2016.10.28
가   격 : 9,500 원
면   수 : 132
크   기 : 128*210mm
   

 

관계와 교감의 열망이 생성한 이인칭의 시학

『사프란블루』는 『심상』과 『서정시학』으로 등단한 한효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유안진 시인은 추천사에서 ‘읽을수록 눈이 젖는다. 가슴이 저리다. 아프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는 편편마다 시인의 시적 역량과 피 묻은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라고 썼다. 이는 시집의 주요 테마를 이루는 어떤 상실과, 또한 세계를 대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시집은 대부분의 시가 이인칭의 대명사를 호명하고 있다. 생의 조우자들을 ‘당신’으로 불러 세우고, 시적 공간을 ‘우리’의 세계로 만들며 긴밀감을 조성한다. 한효정의 시는 멀리, 두루 보기보다 특정 대상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역과 마주앉은 주인공의 시선이나 내면을 다루는 드라마에 가깝다. 『사프란블루』에서 느껴지는 밀도감은 시적 장치가 이러한 구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비처럼 사물들을 집어 삼키는 열렬한 허기와 결핍, 교감의 상실

비대칭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열차 밖의 풍경이 아니라 객실 속 ‘당신’과 나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처럼, 한효정의 시편들은 진정한 교감을 욕망한다. 그러나 욕망은 허기를 부른다. 마치 좀비처럼 열렬한 허기가 사물들을 집어 삼킨다. 한효정의 시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는 이 허기는 교감과 욕망의 좌절, 결여와 결핍을 반영한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부풀어 오르는 빵”의 이미지는 욕망과 결핍의 좋은 예시다. 배고픔은 표면적으로는 육체적 허기를 가리키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관계의 결핍감을 의미한다. 깊은 교감에 대한 열망과 한시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의 숙명에 대한 인식은 한효정의 시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한때 내게 부풀어 오르는 사랑을 꿈꾸게 하였을 ‘당신’은, 이제 나의 바깥에서 “공벌레처럼 움츠러들어(「둥글어지다」)” 점점 작은 형상으로 둥글어진다. ‘당신’을 바라보는 화자의 안타까움과 연민 속에는 인간 존재의 숙명에 대한 깊은 우수가 녹아 있다.

 

상실과 공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관한 모색의 과정,

붉은 색 너머 “푸른 눈알의 유리반지”가 꿈꾸는 자유

『사프란블루』에는 상실과 공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관한 모색의 과정이 담겨 있다. 일련의 시편들은 삶을 성찰하는 것으로써 그간의 상실감과 상처를 해소하고 있다. 이는 생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며 자신을 동여매는 작업이다. “내게서 튕겨나간 당신들을 주워 담지 않(「석류를 먹으며」)”겠다는 선언은 ‘나’의 조갈을 더 이상 다른 존재에게서 구하지 않고 스스로를 삶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의지이다. 『사프란블루』에는 별처럼 빛나는 이국적인 시편들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열망과는 다른, 다소 환상적이고 평화로운 형상들을 펼쳐 보인다. 시편들에 묻어난 붉은 색, 그 너머를 「사프란블루」가 보여주고 있다. “푸른 눈알의 유리반지”, 이 순수하고 신비로운 푸른색 형상은 시인이 꿈꾸는 자유의 상징이다. 그 소망은 시집의 끝에 실린 「등을 마주대고 앉아」가 보여주는 아름다움, 그 지극한 평화와 깊은 화해의 형상에 닿아 있다.

 

- 저자소개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심상』과 『서정시학』으로 등단하고 시집 『나비, 처음 날던 날』, 여행에세이 『지금 여기, 산티아고』가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1부

Hungry Eye 1 | 국수 생각 | 달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 경칩 | 빵을 굽는 아침 | 시치미 떼다 | 흰 고양이, 하필 너였을까 | 안경알이 빠지듯 | 깃털 하나 | 시베리아 횡단열차 | 둥글어지다 | 노인과 장미의 진실 | 모독 | 사라지고 나서야 간절한 | 말복

2부

두 번째 송어를 발라먹고 있을 때 | 사과는 다르다 | 멍게를 켜다 | 석류를 먹으며 | 입김 | 토란 | 콜라비 | 감자탕 | 가자미들 | 굴비들 | 진달래 화전 | 국 없는 나라 | 스며들다 | 레몬차 | 가장

3부

입동 | 맨발들 | 사프란블루 | 후쿠오카 후쿠오카 | 하늘걷기 | 해운대에는 갈매기가 살지 않는다 | 용길을 찾아서 | 성산대교 아래에서 | 후안 호세의 마을 | 입술의 유통기한 | 굴뚝론 |구명환, 겨울 | Hungry Eye 2 |

퍼펙트 센스 | 만추

4부

응답하라 1980 | 이마에 붉은 티까를 찍고 | 374, 394 | 높고 먼 당신 | 능소화 | 개기월식 | 시지여이숙 | 창백한 우울 | 8분 | 슬픔도 리필이 되나요? | 시월 | 해피엔딩 프로젝트 | 어떤 울음 | 등을 마주대고 앉아

 

해설 | 이인칭의 시학과 푸른 열망 ․ 김문주

 

- 책 속으로

 

칸칸마다 들어찬 숨소리와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

기차는 이르쿠츠크에 당도하겠지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손을 잡고

세상에서 가장 깊고 차갑고 푸른 바이칼 호수에 사는

반투명 물고기 골로미얀카를 보러 가야지

호수에 몸을 담그면 우리도 투명해질지 몰라

당신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나는 당신의… 큭큭

그것은 꿈결처럼 아득하고 달콤하기만 한 일이어서

마치 저 세상의 일인 듯 느껴지네

어쩌면 그곳은 우리가 시작된 곳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당신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았던 곳

어느 생에서 자작나무와 한 송이 눈으로 만났을지도 모르는

당신과 나는 횡단열차의 낡은 의자에 앉아

덜컹거리며 생의 허리를 가로지르겠네

종착역은 가까워오고 우린 여전히 서로를 모르는 채

- 「시베리아 횡단열차」 부분

 

개똥밭을 걷고 걸어 발이 닳고

종아리가 닳아 몸통만 남으면 어때

그땐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지

 

여기가 바닥이라고 엎드려 울면 뭐해

냉이꽃 한 송이도 바닥을 뚫고 나오는 걸

당신과 내가 앉은 자리는 꽃들이 눈물 훔치는 자리

견디는 거지 궁둥이를 견디는 변기처럼 지긋지긋하게

- 「시치미 떼다」 부분

 

뱀을 생식하다 입원한 환자가

입덧을 시작한 임산부처럼 웩웩거렸다

 

기생충을 가진 개구리를 잡아먹은 뱀을 잡아먹은 사람을 잡아먹은 기생충

 

간밤에 여자를 만졌을 손가락으로

담배를 빨고 있는 남자 옆을 지날 때

세상의 냄새들이 몰려와 코를 찌를 때

 

공갈빵 속에 갇힌 공기방울들

압력솥 안에서 끓고 있는 쌀알들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와 한 이불 속에 누워있는 꿈을 꾸었다

그는 내가 사랑한 너를 사랑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일지도 몰라

 

간밤엔 미친 듯이

눈발이 날렸고

아침이 되자

녹아 사라졌다

 

꿈이 깨면 내통의 흔적도 지워질까

 

겨울에 먹은 알탕이 부화되어

나를 찢고 나오려 한다

- 「경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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