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시코쿠를 걷는 여자
글쓴이 푸른향기 날 짜 16-10-31 13:14 조회( 225 ) 댓글( 0 )
시코쿠를 걷는 여자
저   자 : 최상희
출판사 : 푸른향기
발행일 : 2016.10.29
가   격 : 15,000원 원
면   수 : 344쪽
크   기 : 140*200mm
   

 

스페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고, 일본엔 시코쿠 순례길이 있다

바다와 산을 끼고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1,200km의 빼어난 길

일본열도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 시코쿠에 1,200km의 아름다운 길이 있다. 바다와 산을 끼고 88개의 사찰을 도는 1,200년 된 길이 그것이다. 이 시코쿠 순례길을 여섯 번씩이나 걸은 여자가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운영하던 가게가 망했다.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빌려준 지인은 어느 날 사라졌고, 지극정성을 다했던 남자친구에게는 배신을 당했다. 연이은 불행으로 좋아하던 운동도 하지 않고, 허기진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느라 체중은 고도비만에 가까워졌다. 우울증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자리 잡을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시코쿠 순례길. 온몸으로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20kg의 배낭을 메고 45일 동안 걸었다. 이 순례여행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순례자에게 차나 음식, 잠자리까지 제공하는 시코쿠의 아름다운 전통, 오셋다이

진언종의 창시자인 코보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돌던 불교 순례길이 요즘엔 일반인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아름다운 길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코쿠에는 오헨로(순례자)들에게 베푸는 오셋다이(접대)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시코쿠를 걷는 여자』 최상희가 받은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순례자 복장인 흰 옷을 선물받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과 음료, 숙소를 제공받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목욕 오셋다이를 받고, 차를 태워주는 사람도 만났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셋다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어.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야. 그러니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어.”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천 엔을 건네며 했던 말이다.

 

동행이인, 혼자이면서 함께인 시코쿠 순례길을 여섯 번이나 걸으며 길의 일부가 된 여자

길에서 만난 오헨로들은 동행이 되기도 하고, 숙소에 함께 머물기도 하며 우정을 나눈다. 길 위의 ‘동행이인(同行二人)’ 표식처럼 그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차츰 그녀는 우울증이 치유되고, 긍정의 마음을 되찾아간다. 시코쿠 88개소 여섯 번, 시코쿠 번외사찰 20개소 네 번, 쇼도시마 88개소 한 번 결원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7년차 오헨로상 최상희는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인과 외국인, 일본인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정도로 순례의 달인이 되었다. 그녀는 걷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동가로 변신했다. 도쿠시마의 오래된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과 고치현의 츠키야마진자 루트 순례표지판 설치작업에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외국인 여성 최초로 공인센다츠(순례길안내자) 자격증을 받았다. 2014년에는 89개의 헨로코야(순례자쉼터) 프로젝트에 동참하여 한국, 일본, 영국의 기부금을 모아 70번 절과 71번 절 사이에 한일 우정의 헨로코야를 건설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시코쿠신문, NHK 등을 통해 일본에서 더 잘 알려진 최상희는 국내에서도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시코쿠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돕고 있다.

 

- 저자 소개

뭐든지 발을 내디뎌 보고 몸으로 부딪혀야 배우는 경험주의자. 옷깃을 스치듯 단 한번 만난 사람과도 시절인연을 믿는 인연주의자. 그러다 보니 매번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으로 인해 다시 위로받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야말로 위대한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는 ‘사람책’을 좋아한다.

2010년부터 시코쿠를 걷기 시작하여 88개소 사찰을 모두 순례하는 결원 6회. 번외사찰 20개소 4회, 쇼도시마 순례길 1회 결원하고, 시마시코쿠를 조금씩 나눠서 순례 중인 7년차 오헨로상이다.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인과 외국인, 심지어는 일본인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정도로 순례의 달인이 되었다. 도쿠시마의 오래된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고치현의 츠키야마진자 루트 순례 표지판 설치작업에도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외국인 여성 최초로 시코쿠 88개소 절의 공인 센다츠(순례길 안내자)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 2014년에는 89개의 헨로 코야(순례자 쉼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우타 선생과 함께 한국인, 일본인, 영국인의 기부금을 모아 70번 절과 71번 절 사이에 한일 우정의 헨로 코야를 건설하기도 했다. ‘동행이인(http://cafe.daum.net/ShikokuOhenro)’이라는 인터넷카페를 운영하며 시코쿠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돕고 있다.

 

- 차례

프롤로그 | 삶의 늪에서 빠져나와 한 걸음 내딛다

제1장 도쿠시마, 처음의 마음으로(발심의 도장)

첫 오셋다이, 뜻밖의 순간 | 애도의 걸음들 | 내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사람 | 하룻밤이 열흘 같았던, 가모노유 | 젠콘야도 | 악명 높은 위험천만, 헨로 고로가시 | 죽을 각오,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삶 | 자신의 호흡대로 걷는다는 것 | ‘에로 9단’ 이노우에상과 ‘트러블 메이커’ 최상 | 휴직계를 내고 걷는 다카하시상 | 눈물 젖은 오셋다이와 마중 | “악!” “윽!” “와!” 변화무쌍한 순례길 | 노숙 센세, 슈상

제2장 고치, 걷고 걷고 또 걷고(수행의 도장)

해녀와 순례자 | 고치가,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사람들 | 일생에 단 한번의 만남 | 공동묘지에서의 오싹한 밤 |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건배상 | 슈상과 함께 생애 첫 노숙 | 이러다 공중부양할지도 몰라! | 노숙의 달인, 사케의 재발견! |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지영 씨와의 만남 | 니나가와상과 지영 씨 한·일 특별한 우정 | 노부부 오헨로상, 그리고 내 힘의 원천! | 반가운 이들이 모인 최남단, 아시즈리곶 | 효녀 심청, 아키코상

제3장 에히메, 나에게로 더 가까이(보리의 도장)

누군가를 위해 걷는 순례자들 | 네덜란드 오헨로상과 타누키 | 열흘 밤 다리, 하룻밤 노숙 | 한밤중의 SOS | 울트라 파워 도보, 걷기의 달인 | 보리밭 사잇길로 | 오헨로상들의 마돈나 | 센과 치히로를 찾아서 떠나는 시간여행 | 오셋다이 풍년, 예술의 경지, 쇼진요리 | 친절을 가장한 성추행

제4장 가가와, 행복에 이르는 길(열반의 도장)

순례길의 빛과 그림자 | 타코야끼 집에서의 목욕 오셋다이 | 다음에는 맛집 투어, 우동순례를 | 독단선생, 스크루지 슈상 | 42일간의 1,200km 순례 끝에 결원 | 스미다상 부부와의 마지막 밤 파티 | 고야산에서 순례를 마치며 | 결원의 축하, 눈물의 편지 | 코보대사의 선물 | 시간이 흐른 뒤, 순례 친구들

에필로그 |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시코쿠에서 만난 인연들

부록 | 시코쿠 순례길의 역사, 순례의 방법과 소요기간, 순례의 장비, 절에서의 참배법, 용어 정리, 숙박 시설

FAQ

숙박업소 정보

 

- 본문 속으로

어느새 다카하시상이 다시 앞질러 갔고, 나는 점점 처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팡이에 몸을 기대어 패잔병처럼 겨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저녁 6시 15분이 되어서야 22번 절 뵤도지에 도착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힘겨운 걸음 끝에 쓸쓸한 풍경을 마주해서일까.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카하시상이었다.

 

목욕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방바닥에 검은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김치 사발면, 연어와 명란 삼각김밥이 하나씩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일부러 김치 사발면까지 사다 주신 것이었다. 잘 공간을 내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손수 이것저것 챙겨주시다니. 닭똥 같은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어느 때보다 힘든 날이었는데 할아버지의 자상함에 모든 시름을 잊어버렸다.

 

아침부터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여성 운전자가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오헨로상~ 이거 드시고 힘내서 가세요!” 피로회복제였다. 좁은 일차선 도로에 차를 일부러 세워놓고, 빈 병은 자신이 들고 가서 버려주겠다며 내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을 다시 받아갔다.

 

아침에 “악!”, “윽!” 소리 내었던 나는 이제 “와!”를 외치게 되었다. 시코쿠 순례길은 이렇듯 항상 예측불허였다. 길은 절대 한 단면만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어느덧 변화무쌍한 길 위에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품고 끌어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며 꽤 쌀쌀했다. 나 혼자만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슈상은 정말 괜찮을까? 방에 있는 모포라도 가져다줄까? 순간 고민했지만 여행의 방식은 각자가 선택한 길이고, 스스로가 헤쳐 나가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섣부르게 손길을 내밀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최상이 나를 위한다는 행동들이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 돌이켜보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모두 소진한 후에 다시 생명의 호흡이 시작되는 소리. 그때 숨비소리를 들으면서 숨을 멈춰야만 살 수 있는 해녀의 삶에 대해 경외감을 넘어서 뭉클함이 느껴졌었다. 한편 제각각 힘겨운 사연을 안고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걷고 있는 순례자들의 삶도 해녀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마지막 오셋다이야. 희상은 한국 사람이라 김치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했지? 내가 없더라도 이거 먹고 힘내서 걷길 바라.” 다카하시상은 나 몰래 사두었던 미니 김치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뒤늦게 양치질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허걱, 이게 뭐야?’ 젠콘야도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공동묘지였다. 내가 공동묘지 바로 앞에서 잠을 잔 것이다. 그래서 주인아저씨가 커튼을 쳐놓은 것이었구나. 어쩐지 밤새도록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라니….

 

시코쿠를 순례하면서 처음에는 무사히 절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걸으면서 차츰 걷고 있는 길 위에서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을 무렵, 슈상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랑 노숙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불안하지는 않았어? 처음부터 날 믿었어?” “그럼요!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같이 노숙을 하겠어요?” 나의 대답에 슈상이 웃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산길을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낙엽들 사이로 나보다 더 조심조심 걷고 있는 작은 생명체를 발견했다. 게였다. 느리게 걸으니 주위의 작은 움직임들도 잘 보였다. 빨리 걸었다면 자칫 밟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하천 사이로 활짝 피어있는 벚꽃들은 거센 폭우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비바람에도 살아남은 것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는 머리까지 깎고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수행에 집중하며 허 화백을 응원하기 위해 시코쿠 순례길을 돌았다고 한다. 죽은 여동생을 위해 걷는 아가타상, 편찮으신 아버지를 위해 걷는 아키코상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걷는 걸음은 더 깊고 뭉클하다.

 

“왜, 무슨 일이야? 불이라도 났어?” “저기… 나 화장실 가고 싶어. 그런데 무서워서 혼자 못 가겠어.” “아, 알았어. 같이 가자.” 손전등을 들고 나와 슈상을 대사당 마당에 앉아 기다리게 했다. “어디 가지 말고 거기서 꼭 기다려야 해. 알겠지? 어디 가면 절대 안 돼!”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혹시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면? 갑자기 멧돼지라도 튀어나오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오헨로상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스스로를 믿고 전진하는 수밖에. 그러다가 점점 생각이 바뀌어갔다. 안개가 짙어서 그렇지, 이곳 산길은 어쩌면 걷기에 최고의 산책로일지도 몰라.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라 발에 전혀 부담이 가지 않았고, 사람이 없어 자연 속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산속에 있는 휴게소는 그 어느 곳보다 운치 있고 아늑했다. 오헨로상으로 지낸 지 28일째 되는 날, 나는 비로소 낯선 길도 바라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나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낙심하고 지냈었는데, 이곳에서는 오헨로상들 사이에서 '마돈나'라고 불린다니, 큰 변화가 아닌가. 잃어버린 자신감도 되찾고, 마음은 더없이 여유로워졌다.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 길 위에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슈상의 제안에 모두들 재료비를 나누어 내고 요리는 슈상이 했다. 새우, 소고기, 숙주, 피망 등 재료들이 듬뿍 들어간 슈상표 야끼소바는 지금까지 먹어본 야끼소바 중에 최고로 맛있었다. 밖에는 폭우가 내리치는데, 비 걱정하지 않고 한 달 만에 가져보는 휴식의 시간은 아늑하고 달콤하기만 했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깊어가던 오늘밤의 만찬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코보대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가타상과 슈상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물처럼 소중하고 귀한 나의 인연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셋다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어.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야. 그러니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어.”

 

처음에 순례를 시작할 때는 헨로들이 특별하게 보였는데, 여행 막바지에 이르면서는 순례자들에게 정성껏 오셋다이를 베푸는 극진한 마음들이 더 특별하고 인상적이었다.

 

시코쿠에 오기 전 몇 년간 나는 어둠 속에 있었다.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체중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무언가 노력하기도 전에 포기하곤 해서 가슴이 텅 비어 있었다. 그간 잃어버렸던 빛 하나가 다시 가슴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아가타상, 아주 아주 나중에… 아가타상이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면… 그때는 아가타상이 동생을 위해 걸었던 것처럼 내가 아가타상의 사진을 들고 돌아 줄게요. 이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죠?”

 

1,200km, 45일, 20kg 배낭을 메고 걸었던 순례길은 걷기 좋은 산길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어둠을 품은 좁은 터널,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들판, 아찔한 해안가 절벽 등 다양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 길은 굴곡진 내 삶과도 닮아 있었다. 때로는 노숙을 하며 배고픔과 통증, 추위에 맞서야 했지만 나는 해냈다. 나는 혼자 출발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끝까지 걸어낼 수 있었다. 나이, 국적, 직업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 나누는 마음만이 길 위에 존재했다.

내가 순례를 통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긍정적인 생각과 손톱만큼의 작은 희망이라도 그것을 믿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순례자들은 이 길을 다 걷고 결원을 한 뒤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순례길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기는 내게 풍경처럼 자리 잡은 소중한 순간의 인연들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 그 인연이 또 다시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도우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죽음이 순례길을 걷도록 이끌었지만, 지금은 풍요로운 마음을 나누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88개 사찰을 도는 것만이 순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코쿠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인생이라는 길에 발을 딛고 걷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발을 내딛고 있는 일상에서도 나의 순례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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