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한복, 여행하다
글쓴이 푸른향기 날 짜 17-08-03 16:21 조회( 56 ) 댓글( 0 )
한복, 여행하다
저   자 : 권미루
출판사 : 푸른향기
발행일 : 2017.08.08
가   격 : 15,000 원
면   수 : 268
크   기 : 140*200mm
   
한복 입기 바람이 분다! #한복스타그램 #한복데이트 #한복여행
“남들과 똑같은 것은 싫다!”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청년들이 한복을 패션 아이템으로 삼으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SNS에서 한복을 입고 셀프카메라를 찍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한복 마니아’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한복스타그램 #한복입고 #한복여행 #한복데이트 등 관련 해시태그가 넘쳐나고 있으며, #패션한복 해시태그 게시물은 2천 개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한복 입고 여행하기’가 청년들의 버킷리스트가 되면서 여행 가방에 한복을 챙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복 입고 어디까지 가봤니? 히말라야에서 스페인까지
어릴 적부터 유난히 한복을 좋아했던 저자 권미루는 우연히 ‘한복을 입고 참여하는 모임’에 갔다가 한복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후, ‘한복 프로젝트’를 기획해 한복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녀는 특별한 날에만 한복을 입는 것이 아닌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기 위해 직접 한복을 연구하고 제작했다. 자신의 몸에 딱 맞는 맵시 좋은 한복을 입게 되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외모 콤플렉스’도 극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된다. 한복만 입고서 여행할 수 있을까? 한복차림으로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을까? 한복을 입고 여행하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말렸다.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시작된 여행! 그것은 편견을 깨기 위한 모험이었다.

한복 입고 4,130미터의 히말라야에 오르고, 몽골 초원을 달리다
뚜벅뚜벅 세계 속으로 걸어 나간 한복여행가 권미루의 좌충우돌 여행기

그녀는 전통한복을 입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꽃신을 신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었다. 여행 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여행기를 올리자 순식간에 조회수 37,967, 추천 800개를 기록했다. 이번엔 한복을 입고 악천후와 고산증에 시달리며 4,130미터의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올랐다. 생활한복인 철릭원피스를 입고 스페인을 여행했으며, 베트남에서는 현지인들과 한복체험을 하고, 트레킹을 했다.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몽골의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렸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한복은 여행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운 옷이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복을 입고 13개국 63개 도시를 여행했다. 『한복, 여행하다』는 그중에서 이탈리아, 네팔, 스페인, 베트남, 몽골, 다섯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은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그녀만의 특별한 경험이 담긴 이야기이다. 
 
한복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한복덕후의 민간외교
그녀는 현재 전통문화프로젝트그룹 한복여행가를 이끌고 있다. 한복과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한복파티, 한복플리마켓, 한복을 입고 버스킹(길거리공연), 한복여행, 문화기획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현지인과 여행자 들이 다가와 한복이 아름답다며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베트남 사파 트레킹을 할 때 소수민족 마을의 한 여중생은 한복을 먼저 알아보고 알은체를 했다. 한복 입고 여행하는 모습에 감명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복의 매력을 더 많이 공유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고, 여행에서 돌아와 국내외 최초로 한복여행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오랜 여행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한복을 입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그 무엇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녀는 한복에 대해 알고 많은 것을 한복을 입고서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 작가 소개
한복여행가, 한복문화소믈리에, 한복덕후, 한복문화활동 칼럼니스트.
진로취업 컨설턴트로서 10년째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한복을 입고 참여하는 모임’에 갔다가 한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한복의 가치와 가능성을 직접 느끼고 깨닫기 위해 한복만 입고 여행하기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한복 입고 제주 한라산을 등정하고,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올랐다. 국외 13개국 63개 도시를 여행하며 현지인들을 만나 교육, 한복체험 등의 재능기부를 해왔다. 한복여행가를 창직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복놀이단 단장을 거쳐, 현재 전통문화 프로젝트 그룹 한복여행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전문가 칼럼과 삼성 live 한복 칼럼을 써왔으며, 국내외 최초 한복여행사진전, 한복여행세미나를 통해 한복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예비 한복여행가들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직접 경험한 한복의 세계를 여러 프로젝트로 기획,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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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여는 글 | 떠나볼까, 한복 입고
1장 전통한복만 챙겨서 | 이탈리아
한복 입고 이탈리아 여행 | 이탈리아 드레스 코드 ‘전통한복’ | 밀라노, 흑백 속 컬러풀 | 여기서 찍으라구 | 이런 데서 왜 한복을 입었대? | 피자가게의 슈퍼스타 | 패션리더도 반한 한복 | 기모노가 아닌 한복이라고요! | 피오레 할아버지, 그리고 닉 | 로마 돌길에서 꽃신 신고 사뿐! | 한복치마의 비밀 | 이게 바로 이탈리아 커피의 맛 | 마르코에게 배운 손님 맞춤형 판매 | 한국인의 입맛, 볶음 고추장 | 눈물 젖은 김치 | 한복 유전자를 물려받다 | 인기 폭발 이탈리아 여행기
2장 한복,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오르다 | 네팔
8불짜리 지도 | 네팔 1급 여행가이드 쌍두 | 과연 한복 입고 트레킹이 가능할까? | 들어는 보았나? 손으로 먹는 음식, 달밧 | 나만 아는 모자 끈의 출처 | 미루의 걸음은 할머니 같아요 | 더러움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 너도 맨발이네? | 패딩점퍼 대신 누비저고리를 입고 | 히말라야에 온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 | 히말라야 산속 모자 파티 | 슬리퍼 차림으로 빗속을 뚫고 | 미루는 예쁩니다 | 글로벌 놀자판 | 때때로, 엄마 | 축하해줘, 내 생일이야 | 드디어 비가 그쳤어! | 갈릭스프 속으로 눈물방울이 뚝뚝 | 오렌지 환타 신봉자 | 든든한 나의 셰르파, 디 | 저 하늘의 별빛처럼 | 실종자 명단에 올라가다 | 가장 힘들었던 마지막 20분 | 산 덕후 크리스티 | 왜 한복 입고 여행하나요? | 한복여행자의 보따리 속에는 뭐가 들었나?
3장 철릭원피스를 입고 | 스페인
새로운 디자인의 한복을 궁리하다 | 한복 입고 만나는 호안 미로 | 바람 부는 몬세라트수도원 | 구엘공원, 가우디와의 대화 | 속치마를 안 입으면 잡혀 가냐고? | 물고기를 보려면 물고기와 같은 포즈로 | 타인의 취향, 나의 취향 | 한복 입은 거 보고 달려왔어요! | 철릭원피스도 한복이야?
4장 한복을 알아보는 사람들 | 베트남
아오자이 가게를 찾아서 | 낯선 가게에서 홀딱 벗다 | 베트남의 톰 소여 | 수아에게 한복을 입혀주다 | 베트남 친구들과 베트남에서 한복 체험을 | 한국 덕후 베트남 소녀들 | 저는 한국인이에요 | 하노이에 사는 삼총사의 꿈 | 바가지 종결자 | ‘타인’을 만나다 | 신장개업한 가게에 초대받다 | 아르바이트생, 민 | 드디어 사파로 출발하다 | 신발 벗어! 빨리 들어가! | 슬리핑버스에서 속치마 벗기 | 트레킹 동료들이 모이다 | 한복과 고무장화 | 앗, 내 배낭이 데굴데굴 | 베트남 모자 사용법 | 새끼 돼지랑 사진 찍고 싶어 | 소수민족 흐멍족 사람들 | 하나만 사 주세요 | 엑소 팬이에요! | 타각타각, 젓가락질 자랑 | ‘섹시 베이비’ 지구촌 춤판 한마당
5장 말 타기에 좋은 한복은? | 몽골
하루 종일 원 없이 말을 탈 수 있는 곳 | 말 타기 좋은 한복 찾아 삼만 리 | 전통무예복과 기성한복과 커스텀한복의 조합 | 홉스굴, 푸르름 가득한 호수 휴양지 | 말 위에서 만난 한복과 델 | 소달구지를 타고 흑혜를 흔들며 | 남자 무당 앙하르, 6대 할아버지와 접신하다 | 별빛 쏟아지는 게르의 밤 | 소원바위에서 “포토, 포토” | 제가 가진 모든 재능을 쏟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 앙큼한 바람의 손, 따뜻한 당신의 손 | 몽골 할아버지가 주신 사탕 두 개 |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닫는 글 | 한복치마에 세계를 품을 때까지

- 본문 속으로
나는 한때 나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았다. 작은 눈에 낮은 코를 가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싫어 단발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한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단지 옷이 바뀌었을 뿐인데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발걸음의 무게가 달라졌다. 한복을 입었을 때의 느낌과 심장 뛰는 소리가 좋았다. 한복치마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꼭 응원가처럼 느껴졌다.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듯 한복은 내 몸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어느 날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복만 입고 여행할 수 있을까? 한복차림으로 히말라야에 오른다면? 한복을 입은 나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몹시 궁금했다. 한복이 나를 어디까지 이끌고 가는지, 내가 어디까지 도전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도 했고, 나에게 관심종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여행을 하면 오로지 내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광명소에 가서 깃발을 꽂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내 스타일대로 한복을 통해 새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여행지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한데 섞이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한복을 통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한복을 입고 용감하게 세계 속으로 걸어 나갔다.

밀라노의 하늘은 금세 비가 올 것처럼 우중충하고 어두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의 도시이지만 사람들 대부분 어두운 색감의 옷을 입고 있었다. 무채색으로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서 보라회색의 풍성한 한복치마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와 닿았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갖가지 명품 브랜드로 휘휘 감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가슴을 활짝 펴고 도도하게 걸었다.

“우리 아이가 함께 사진 찍고 싶어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제 갓 7살 정도 되었을까? 양 머리를 고무줄로 쫑쫑 맨 여자아이가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물론이죠. 같이 찍어요.” 내가 활짝 웃자 아이의 얼굴도 밝아졌다. 아이는 나와 찍은 사진을 보며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맙소사! 외국인 모녀의 뒤로 서너 명이 더 줄을 섰다. 그렇게 피자가게 안에서의 ‘깜짝 사진촬영’이 진행되었다.

오늘 내가 입은 한복은 흰색 장저고리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짧은 길이의 코랄색 면치마. 시원한 재질로 만들어 겉 바지로도 입을 수 있는 얇은 소색바지는 발목까지 내려왔다. 끝단을 등산양말 속에 집었더니 한복바지처럼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꽃신이나 흑혜를 신고 싶었지만, 안전을 위해 중등산화를 택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기능성 셔츠는 아니었지만 면 재질의 한복을 입은 덕분에 땀이 흘러도 걱정 없었다.

신축성 있는 끈을 찾아 몇날며칠 집안을 뒤지던 나는 마침 딱 맞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브래지어! 나는 브래지어의 어깨끈을 잘라 모자 끈으로 이어 붙였다. 역시 예상대로 신축성이 있어 얼굴에 딱 고정됐다. 여행 중, 내 모자를 본 사람들은 많았지만 누구도 모자 끈의 출처가 브래지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거 전통의상이야? 그 파란 바지 말이야.” “아니야, 그냥 입은 거야. 너야말로 옷이 특이하네.”
우리는 서로의 독특한 차림새를 보며 웃었다. 셋 다 맨발이라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포카라에서 출발한 날짜는 나보다 앞서 있었다. 두 사람은 좀 더 천천히 산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나도 충분히 시간을 두고 여기까지 걸어 올라왔다면 더 많은 모습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을까.

어떤 사람은 산이 좋아서, 어떤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서 산을 찾는다. 이 가족은 추억을 쌓으려고 왔고, 나는 한복의 진가를 깨닫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각자 다른 이유로 시작했지만 히말라야 중턱 세찬 비가 내리는 어두컴컴한 나무 판잣집 아래 한데 모였다.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전혀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속 얘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또 블랙아웃이다. 네팔 산중에서는 유난히 정전이 잦다. 게다가 이렇게 기상 상태가 안 좋은 날에는 언제 전력이 다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이닝룸에 모여 있던 트레커들이 낮게 웅성거렸다. 깜깜한 채로 오늘 밤을 지새워야 하는지, 내일 출발할 수는 있을지…. 모두들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딱 400미터 전이다. 3,200미터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파왔다. 속도 조금씩 울렁거렸다. 누군가 내장에 추를 달아놓은 것 같았다. 추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데우랄리를 출발할 때 보였던 메마른 땅이나 잔디는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면저고리는 땀에 흠뻑 젖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좀비가 되어 뾰족뾰족한 설산에 둘러싸여 앞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눈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다. 아이젠을 끼웠지만 자꾸 발이 미끄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엉덩이가 무거웠다. 스틱은 내 손에서 휘휘 흔들렸다. 한참 뒤에서 걷고 있던 트레커가 어느새 나를 지나쳐 멀찍이 앞서 걸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쌩쌩했던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디가 물을 권했다.
디가 비틀거리는 나를 안나푸르나 롯지의 식당으로 이끌었다. 드디어 앉는구나. 머리가 팽팽 돌고 속이 답답했다. 눈앞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하얀색 고름이 풀려있는 저고리 섶 위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진짜 도착해 버렸어. 이렇게 와 버렸네. 드디어 도착했네. 그 고생을 하고. 바보 같아. “내가 해냈어요. 디!" 디는 말없이 갈릭스프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토록 지겨웠던 음식이 오늘은 달라보였다. 풀어진 고름을 다시 졸라매고는 스프를 떠먹었다. 뚝뚝 눈물방울이 스프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제의 바람대로 나는 오늘 안나푸르나에서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몰을 보았다.

우리가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날, 디는 내 생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테이블에 손톱만한 양초를 켜 두었다. 디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정말 감동이었다. 디는 내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거센 비바람과 폭우로 전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던 그 깜깜한 밤, 트레커들이 데우랄리 롯지에 함께 모여 불안함을 나누던 밤, 나는 사람들이 축 처져 있는 것 같아 일부러 “내일이 내 생일이다! 나를 축하해줘!”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특이한 아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나에게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생애 처음으로 생판 모르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태어난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짜 내 생일에는 디가 함께 있었다.

“가끔 저 하늘에 있는 별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쟤네들은 그냥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면 되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별들도 수명이 있고 역할이 있으니까 우리의 생각과는 다를 거예요. 내 일도 막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거든요.” 디도 말을 거들었다. 디와 함께 올려다 본 히말라야 산중의 하늘은 매우 깜깜했고 어두웠다. 그래서 더욱 별들이 잘 보였다. 별들은 누가 뭐래도 자기 깜냥에 맞추어 열심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한복을 즐겁게 입고 누리면 그뿐, 그 어떤 의미부여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네팔 실종자 명단에 올라와 계십니다.” 그렇다. 나는 한국 현지 방송사에서 실종자로 표기된 상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제 실종자로 분류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며칠 동안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서는 엄청난 폭설이, 그 아래 지방에서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네팔의 10월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지만 기상이변으로 인해 자연재해가 발생한 것이다.

겨울용 누비저고리와 패딩 한복치마에는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의 추억이 담겼다. 내게 있는 가장 따뜻한 덧저고리로 패딩점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이 도전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이보세요, 가우디 씨. 한복은 말이지요, 천연에서 색상을 추출한답니다. 그 왜, 있잖아요. 포도를 많이 먹으면 혀가 보라색이 되지요? 앵두나 체리를 많이 먹으면 입술이 붉어져서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돌과 나무, 흙, 물 자연의 색상을 그대로 옷감에 옮긴 것이 바로 한복의 색감이에요.” 자연의 느낌 그대로 건축물을 만든 가우디라면 분명 내 설명에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한복을 입혀줄 때, 상대방과 친밀감을 느낀다. 마치 그 사람의 한복을 내가 입는 것처럼 바로 뒤 왼쪽에 서서 옷을 입히고 끈을 맨다. 고름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한복의 고름을 맬 때는 쉬운데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보며 고름을 매는 건 항상 헷갈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상대를 뒤에서 안아 고름을 맨다. 그러다보면 상대의 체취와 숨소리를 매우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한복이 아니었다면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면 쉬 내어줄 수 없는 사적인 영역에 들어갈 수 없었을 거다. 누군가에게 한복을 입혀줄 때면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 게시물은 푸른향기님에 의해 2017-08-03 16:23:29 출간도서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