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아름다운 배웅
글쓴이 푸른향기 날 짜 17-08-25 12:06 조회( 60 ) 댓글( 0 )
아름다운 배웅
저   자 : 심은이
출판사 : 푸른향기
발행일 : 2017.08.28
가   격 : 13,500 원
면   수 : 264쪽
크   기 : 140*210mm
   
『아름다운 배웅』그 이후의 이야기와 장례지도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팁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 심은이 씨가 지난 17년간 현장에서 함께했던 삶의 마지막 모습들을 담아 『아름다운 배웅』개정증보판을 펴냈다. 5년 전 『아름다운 배웅』을 처음 출간하고 난 후 그녀는 ‘강연 100℃’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장례지도사로서의 직업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대기업에 초청되어 강의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분이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며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차츰 장례지도사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름다운 배웅』 개정판에서는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여학생의 마지막을 배웅하게 된 이야기 등 몇몇 에피소드를 더하고, 장례지도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담긴 부록을 추가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더 늦기 전에 말하세요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가 전해주는 삶의 마지막 풍경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재산싸움을 하는 형제들, 아내가 죽었는데 화장실에서 큰소리로 웃는 남편, 딸이 자고 있는 것 같으니 심폐소생술을 한 번 더 해달라고 애원하는 아버지,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등 저자는 빈소의 다양한 풍경들을 퀼트처럼 엮어놓으며 ‘내 눈에 비친 고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당신이 가장 멋진 이야기가 담긴 페이지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고 썼다. 『아름다운 배웅』은 살아 있는 동안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길 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고인을 하나, 둘 보내드리면서 그 시간에 다다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찌꺼기 없는 마음으로 살자고.’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웰다잉의 시대,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웅해드립니다, 아름다운 이색 직업
웰빙(well-being)에 이어 이제는 웰다잉(well-dying)의 시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따라서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는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강조되는 시점이다. 한때 간호조무사로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저자는 영안실에서 올라온 직원들이 고인을 물건 다루듯 하는 것을 보고 장례지도사가 되었다. 처음엔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하면 도망가고 무서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직업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저자는 생명이 떠난 고인에게 시신이나 시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승의 삶이야 어떻든 마지막 길에서는 누구든 외롭게 떠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고인에게 정성을 다한다. 먼 길 아름답게 떠나도록 고인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고 곱게 화장도 해준다. 살아생전 의족에 의지했던 고인에겐 다리를 만들어주고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떠난 아기들을 위해서는 하얀 종이 관에 꽃도 꽂아준다. 고인의 삶과 유가족의 슬픔에 함께 웃고 울어주는 장례지도사.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와 같은 사람에게 마지막을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죽음을 배웅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는 것은 물론, 장례지도사라는 이색 직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2001년 서울보건대학(현 을지대학교) 장례지도과 1기 졸업
2001년~2003년 부산시 시설관리공단 영락공원 근무
2003년~2005년 명지병원 장례식장 근무
2005년~현재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 근무
2012년 『아름다운 배웅』 출간
2015년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입학~현재 재학중
언론보도
2001년 중앙일보 「마지막 길 정성껏 모실게요」, 부산일보 「지상에서의 마지막 단장」
2002년 월간 인터뷰 「이런 ‘사’자 직업 장례지도사 심은이」
2003년 부산일보 기사 「망자의 길 인도 엄숙한 의식에 사명감」
2004년 일간스포츠 돌발 인터뷰 「여성 장례지도사」, KBS 아침마당 출연 「국내1호 여성 장례지도사」
2007년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기고
2012년 부산일보(인+간)
2013년 KBS 강연100도씨 출연-당신의 모든 순간, 가톨릭신문-위령성월에 만난 사람
2015년 평화방송 출연, 화성시 농협 강연, SK 하이닉스 강연
그 외 평화신문, 가톨릭신문, PBS 부산방송, 월간지 등


- 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프롤로그 | 죽음은 늘 삶의 곁에 있다 
나의 기도 | 남아 있는 사람의 슬픔 | 고마웠습니다 | 무심한 하느님 | 죽은 어머니는 시체일 뿐인가 | 장례식과 월드컵 | 부검 후 돌아온 고인 | 뭐가 고마워요? | 화장실에서 웃는 남편 | 100세 vs 24세 | 가족이 많은 세실리아 할머니 |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마음 | 태아에게 보내는 장미 한 송이 | 시신을 기증하신 할머니 | 죽음의 모습은 곧 삶의 모습 | 잔인한 계절 봄 | 독거노인의 쓸쓸한 죽음 | 고인에겐 최저가, 빈소는 최고급 | 매장을 선택하는 유족들 | 할머니의 남편 | 부모님의 빈자리

열세 살 루시아 | 자녀들도 몰랐던 일 | 쓸쓸한 준비 | 조금만 기다리세요 | 인간이기를 포기한 엄마 | 곧 따라갈게, 기다리고 있어 | 유가족이 쓰러질 때 | 왜 이런 일을 해요? | 영정을 앞에 두고 | 피해자와 가해자 |   자살만은 안 돼요 | 호르몬과 자살 | 염습과 입관 | 아름다운 손 | 세 아기의 죽음 |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들  | 엄마, 내가 잘못했어 | 무관심 속의 죽음 | 날씨에 민감한 |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 우리 아이 우짜노 | 심폐소생술을 해 주세요 | 한 달을 사이에 두고 

가난이 뭔지 | 그러는 거 아닙니다 | 형제의 난 | 마누라가 6개월밖에 못 산댜 | 쓸쓸한 임종 | 죽음이 삶을 가르친다 | 히잡을 쓴 여인 | 외식하러 나갔다가 쓰러진 아내 | 루이제의 집 | 오십만 원보다 못한 죽음 | 생과 사의 비교 | 아버지의 뒷모습 |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 악연 |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난 부부 | 부모의 마음은 | 한참 이쁠 때인데 | 영혼을 위한 봉사 | 아름다운 결단 | 네팔인 근로자의 죽음 | 신원미상 | 어느 군인의 자살 | 왜 아기만 데려가셨을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 4년 전을 기억합니다 | 쌍둥이 | 이승에서의 여섯 시간 | 외아들 |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자식들 | 정신지체 딸을 먼저 보내고 | 마음이 아프다 | 숨길 수 없는 것 | 하늘도 무심하시지 | 최고령 할머니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다? | 둘이 아닌 죽음 | 고인도 좋아하실까? | 50년 만에 만난 형님 | 1초만 기다렸다면 | 영혼을 위한 미사 | 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세요 | 타지에서의 외로운 죽음 | 키워준 정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세요 | 사람의 운명은 어디서 시작하는 걸까? | 아름다운 배웅 | 그렇게 짧게 살다 갈 것을 |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 | 사랑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백만 원보다도 더 큰 삼백 원 | 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 종교가 무엇이길래 | 어차피 소각할 건데요 뭐 |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형사님 | 이럴 땐 나도 아파요 | 순서도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 | 왜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거지? | 서대문구 은갈치파 | 꽃샘추위보다 더 혹독한 슬픔 | 출장 장례서비스

할머니라는 이름의 엄마 | 어머니를 버린 게 아니에요 | 저 행복해요 | 마음으로 만들어드린 한쪽 다리 | 하느님과의 타협 | 가정의 달에 찾아온 불행 | 이제 엄마의 손을 놓아주렴 | 너무 죄송합니다 | 아빠, 무서워요 | 모두가 슬프다 | 딸의 눈물 | 부모가 되어 보니 | 음주운전이 빼앗은 생명 | 4월, 꽃다운 아이를 보내며 | 어머니의 장례식을 거부한 딸 |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 | 부모님, 감사합니다 | 메르스가 뭐기에 | 딸 대신 장례미사에 | 아빠 미워! | 쌍둥이의 사연

어머니 생신날 돌아가신 아버지 | 아름다운 손톱 | 따뜻한 치유의 말 | 고인과의 대화 | 꽃관에 누운 혜림이 | 아직 살만한 세상 | 후배야, 고맙다 | 어느 손자의 인사 | 나도 따라갈 거야 | 모니카 자매님 | 아들의 결혼식 | 카네이션 | 내가 일하는 이유 | 명백한 타살 | 나쁜 사람들 | 저 사람이 우리 아들을 냉동실에 넣었어 | 믿을 수 없는 죽음 |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 할머니의 수양딸 | 상실감을 미움으로 | 혼자가 아닌 함께 | 고독사 | 아름다운 마지막
마지막 가는 길 직접 신겨 드리세요 | 10분의 휴식 | 스테파노 형제 | 동병상련 | 공중화장실에 버려진 아기 | 5개월의 여자 아기 | 처음 맞은 가족의 죽음 | 공공기관에 장례복지과가 생긴다면 | 나는 행복한 사람  

에필로그 | 행복한 죽음, 웰다잉을 꿈꾸며
부록     | 장례절차 
           장례지도사가 되려면?


- 본문 속으로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는 사람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지금껏 한번도 후회한 적 없는 내 직업,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이 나는 참 좋다.

내가 장례지도사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내 주변에 오기를 꺼려하고, 나의 손을 만지기도 싫어해서 처음엔 남모르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망자를 씻겨드리고, 옷을 입히고, 곱게 화장을 해드리고 관에 직접 모신 뒤, 그분들이 고향으로 향할 때 나는 먼 길 편히 가시라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 나중에 만나자는 언약과 함께 남아 있는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드리고자 그들을 다독여주고 말로써 안아준다. 그렇게 그분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다른 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충만함이 내 마음에 가득 차오른다.

죽음은 늘 삶의 곁에 있다. 삶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과연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장식해야 할까.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죽을 때에도 편안한 모습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일을 하면서 내 눈에 비친 고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이 중 한 페이지가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면서 가장 멋진 이야기가 담긴 페이지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을 바라봄으로써 마지막 떠나는 날 한 점의 후회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 내 부모, 내 가족을, 친구와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장례 준비를 좀 할라고 하는디요. 돈이 얼마나 들어갈랑가 싶어서.” 나는 할아버지가 궁금해 하는 준비절차와 가격 등을 상세히 말씀드리고 여쭈었다. “할아버지, 근데 어느 분이 많이 편찮으세요?” “아니여, 나가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거 같아서 준비 좀 할라고오.”

“우리 아이 아직 안 갔지요? 이것 좀 같이 넣어주세요.” 빨간 장미 한 송이와 ‘사랑하는 딸에게’라고 적힌 편지를 내민다. 콧등이 시큰해졌다. 사산아이기 때문에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했을 터인데, 죽은 아기에게 사랑을 보내주는 아버진 처음이었다.

수의를 입은 채 입관실에 고요히 누워계시는 93세 할머니는 평화로워 보였다.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평화로우면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하다. 내가 정성스럽게 마지막 단장을 해드리는 걸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도 평온해 보인다. 죽음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고인의 겉모습이 이쁘든 밉든 죽음 앞에서는 차이가 없다. 죽음의 얼굴 뒤에서 그들이 평생 행복하게 살았는지 불행하게 살았는지 느껴진다.

나에게 있어서 장례식장은 작지만 크나큰 세상을 가르쳐준다.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보고 듣는다. 무서울 때도 있고, 마음 아플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뿌듯할 때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나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장례식도 결혼식과 같은 것 아닐까. 결혼식을 인생을 새로이 시작하는 축제라고 본다면, 장례식은(물론 호상일 경우)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축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두들 똑같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입관이 끝난 후 고인의 따님이 다가와 나를 살포시 안아준다. 그리고 내 손을 쓰다듬어 주신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서 너무 고맙다고 한다. 아름다운 손이라며 내 손을 붙잡고 거듭 거듭 이야기를 한다. 따님이 나를 안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가 너무 오랫동안 살고 있으니까, 자식을 두 명이나 먼저 보내버린 거라고!” 부모답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테고, 자녀답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 집안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애통한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서른 살의 아가씨 목에는 지울 수 없는 선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부모님이 보시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자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부드러운 솜으로 감춘다. 고인의 얼굴을 닦는 내내 아버지가 입관실 문을 열고는 애원한다. “지금 잠시 자고 있는 것 같으니 다시 심폐소생술을 해주세요. 제발 다시 한 번만 더 해주세요.”

나는 손을 꼭 움켜쥔 분들을 만나면 손을 주물러 편안한 모양으로 바르게 펴드린다. 왠지 주먹을 꼭 쥐고 있으면 이승에서 무언가를 놓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사망을 하신 고인의 경우에는 아무리 손을 꽉 움켜쥐고 있어도, 손가락 하나하나의 근육을 풀어주면 잘 펴지지만,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신 고인은 심장이 갑자기 멎는 경우라서 그런지 근육도, 단단해져서 손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그래도 최대한은 바르게 펴드려야 먼 길 가실 때 편하게 가실 것 같아서 내 마음이 편안하다.

마흔한 살의 고인은 현장에서 압사를 당한 케이스이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매 둘을 남겨둔 채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했으니 가족들 모두 경황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인 고인의 어머님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결정을 내리셨다. 건강한 몸이었으니 장기기증을 하면 몇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가족들은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아프고, 고통스러울 텐데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을 살릴 생각을 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고귀하다.

식당일을 마치고 저녁 10시 즈음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건널목에서 파란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도로에 내려서서 길을 건너는 중이었고, 고인을 숨지게 한 차량은 빨간 정지신호에 걸리지 않으려고 속도를 낸 것이다. 결국은 한 사람의 귀한 목숨을 빼앗는 사고가 일어났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고인이 1초만 늦게 걸음을 떼었더라면, 또는 달리던 차가 1분을 멈춰 서 기다릴 여유가 있었더라면, 모든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일을 하면서 습관이 생긴 게 있다면 일반 사람의 얼굴, 표정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나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얼굴을 보면서 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 앞에서는 외모가 예쁘고 잘생긴 것과는 상관이 없다. 생전에는 못생겨보였을 것 같은 고인에게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사람의 생전의 마음과 마무리가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천주교 신자인 고인은 하느님과 타협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어느덧 약속한 십여 년이 흘러 아이들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그는 이제 만족해하며 모두에게 아름다운 인사를 남겼다. 8남매 중 막내인 그는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먼저 가 있을게. 미안해. 고마웠어.”라고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했다. 남편에게도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울지 말라고, 나중에 보자고 말했다.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때 새장가를 가라고도 말했다.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한 그,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한쪽 다리가 없는 분이다. 입관할 때 의족을 넣어 드릴 순 없었다. 고무제품이므로 화장을 하게 되면 유골에 달라붙어서 보기 흉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쪽다리로만 먼 길을 보내야 한다면 가족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럴 때는 내 손으로 직접 그분의 다리를 만들어 드린다. 평생 한쪽 다리로 사셨을 인생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마지막 저승길 가실 때에 편히 가시라고 탈지면과, 보공으로 마음을 다해 한쪽 다리를 만들어 드린다. 종아리도 만들어 드리고, 발 모양도 만들어 드린 후, 버선과 꽃신까지 신겨드렸다. 가족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보인다.

2014년 4월 16일, 난데없이 TV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배 안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오보라는 것이 밝혀졌다.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하는 틈틈이 뉴스를 챙겨보며 구조자가 나오길 기도했다.
 
나는 유가족을 꼭 껴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온기를 주고 싶었다. 여고생 지아의 얼굴은 곱디 고왔다. 나는 평소보다 정성들여 고인의 몸을 닦고, 곱게 화장했다. 추위와 무서움 속에서 벌벌 떨며 구조되길 애타게 기다렸을 고인의 마지막을 든든히 지켜주고 싶어서.

혼자서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고, 지옷을 입힌다. 그런데 살짝 겁이 난다.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고인과 대화를 나눠본다. “많이 아프셨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깨끗하게 해드릴게요.” 구석구석 상처 입은 몸을 정성껏 닦으며 주저리주저리 말을 건넨다. 꼭 이 순간을 기다린 사람처럼 고인을 향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염을 마친 고인의 얼굴은 고통은 잊은 듯 온화하다. 마치 내 이야기에 화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인과 가족들이 이별하는 순간, 딸이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엄마, 다음에는 내 딸로 태어나요. 내가 잘 해줄게요.” 순간, 내가 고인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뭉클했다. 진심이 담긴 따스한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어김없이 전해지는 것 같다. 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내 가슴도 따뜻해졌다. 따뜻한 말은 치유의 힘이 있다.

[이 게시물은 푸른향기님에 의해 2017-08-25 12:06:38 출간도서에서 복사 됨]